경험,자기소개

블로그의 시작

yongdiary 2025. 1. 20. 18:48

 나는 '게임 디자이너'라는 꿈을가진 24살이된 이관용이다.

 

이번 블로그를 운영할 기획의도는 '나의 경험과 지식을 추가한 일기'이다.

이 블로그를 쓰기전에 나에대한 이야기부터 하고 넘어가야겠다.

 

나는 어쩌면 평범속에 나를 가둔 것이 아닐까.

 

 나의 인생을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너무 가난하지도,너무 부유한 집안도아닌 특별함속에 컸던 사람도 아니고 공부 실력도 평범,인간관계도 평범, 모든 것이 평범인 23년을 살아왔다. 그렇게 평범이란 나에게 떼어낼 수 없는 존재인 것처럼 살아왔다. 어쩌면 나는 이런 모습에 안도를 하며 살아왔던 것일지도 모른다. 남들보다 못하지도 잘하지도 않고 평범하게 지내왔던 나의 모습은 떨어질 곳은 멀리있고 올라갈 곳은 까마득해 보여 올라갈 엄두조차 나지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저 평범하게 지내왔지만 이제는 '평범'이라는 울타리를 부수고 나가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터닝포인트

 

 내 '평범'을 부수고싶은 나에 인생엔 터닝포인트가 존재한다.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군대,전역 후 대학생활이 존재한다.

 

울타리안에서 울타리를 벗어나다.

 

 군대에가기 전 내가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은 "너무 못하지도 말고, 너무 잘하지도 마"인 평범하게 지내라는 거였다. 눈에 띄면 힘들다고 하는게 이유였다. 이런 생각이 맞는지 틀린지는 가봐야지 알겠지만 먼저 간 사람들의 충고였기때문에 난 일단 이렇게 해야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자대배치를 받았었다. 자대배치를 받고 얼마지나지않아 눈에띄는 선임이있었다.

그 선임은 빈틈없어보이고 군대에서 말하는 '에이스'라고 불리는 군생활 잘하는 선임이였다.

"너무 못하지도 말고, 너무 잘하지도 마"라는 충고랑은 정말 반대되는 사람일정도로 항상 잘하기만 하는 선임이였다.

그 선임을 보며 마음속에서 알 수 없는 의지가 생겼고 존경과동시에 평범한 후임이 아닌 저 선임처럼 '평범'에서 벗어나 '에이스'라는 목표가 생겼다. 내 인생에서 '평범'이라는 울타리를 깨닫게 된 첫 순간이였다. 

 

 '평범'이라는 울타리를 깨닫고 나가려고 노력했지만, 벗어나긴 쉽지 않았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잘해보려고하니 어려웠다.

그래서 난 선임을 따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잘하는 법을 모르니 잘하는 사람을 따라해야겠다고 생각했던거다. 그래서 그 선임의 습관,생활패턴 심지어 취미까지 따라하기 시작했다. 서툴었던 나는 능숙한 에이스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에이스'라는 소리를 처음 듣게 되었고 그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성취감이였고, 내 인생에서 '평범'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게된 첫 경험이였다.

 

 그 선임이 전역하고난 뒤 나는 분대장을하게 되었다. '에이스'라는 목표를 달성했지만 공든탑을 무너뜨리고 싶지않았고 열심히 하는 나의 모습이 너무 좋아서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그 목표는 내가 '평범'이라는 울타리에 갇혀있단 걸 깨닫게 해준 선임처럼 누군가에게 있어서 나는 '따라하고 싶은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배웠던걸 더욱 다지고 후임들이 나를 찾기 시작하며 뿌듯함을 느끼던 도중 발목을 크게 다치게 되었다.

 

 훈련을하다 발목을 다치게 되었던 나는 미세골절,인대파열등을 진단받게 되었다. 믿기지가 않았다. 평생 크게 다쳐본적도 없고 깁스는 처음해봤었다. 후임에게 해결책과 방향을 만들어줄 능력을 다지고 있었고 후임들에게 '따라하고 싶은 사람' 의 목표가 있었지만 한 순간에 나는 후임들에게 짐이 되어버렸다. 챙겨줘야할 후임을 못챙겨주고 내가 해야할일을 후임이 하고있던 나는 후임에게 욕 먹을 걱정도 했지만, 노력으로 쌓았던 공든탑은 견고했던걸까 후임들은 나에게 힘내라며 이것저것 챙겨주고 힘들어하는 나에게 힘이되는 말까지 해주며 위로해줬다. 목표까지 가지 못했지만 목표까지 가려고했던 길은 남아있어준다는 걸 깨달았다.

 

 발목이 다친 난 나에대해 정말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평범'이라는 울타리에 갇혀 어떤 인생을 살면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 나에게 있어 '목표'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등등 많은 성찰을 했었다. 가을쯤이였나, 일과를 받지 못해서 1년을 넘게 있었던 생활관의 창문을 보던 때였다. 항상 보던 밖의 풍경이였는데 그땐 새들의 날아가는 모습,지저귀는 소리,살랑거리는 나뭇가지가 정말 색다르게 느껴졌다. 기분이 정말 오묘했다. 느껴본적 없는 감정이였고 '내가 다치지 않았다면 이런 느낌도 느껴보지 못했겠지?'라는 생각을했다.발목이 다쳐 우울했던 난 오히려 발목을 다쳐 이러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경험을 하게되었다는 걸 깨닫게되었고 긍정적이게 바뀌었다. 그렇게 남은 군생활은 발목 재활에 힘을 주며 '따라하고 싶은 사람'의 목표를 위해 후임들에게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도와주고 알려주었다.

 

 기다리던 전역날이 왔다. 전역식을마치고 후임앞에 섰을때 후임이 날 보며 울었다. 후임에게 있어 그저 정들었던 사람이 가서 울었던거였을 수도 있지만, 나에게 있어서 그 울음은 정말 뜻 깊었다. '에이스'와 '따라하고 싶은 사람'의 목표를 잡고  열심히 군생활 해왔던 나의 18개월의 군생활을 보답받는 눈물이었다. 

 

 군대는 나에게 '평범'이라는 울타리를 깨닫게 해주고 목표를 향한 나의 의지는 정말 강하다는 걸 깨닫게 해주었던 의미가 깊은 곳이였다. 평범인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준 곳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나에게 가능성을 보여준 장소였다. 

 

나는 목표가 있다면 그 목표를 향해 무조건 달려간다는 사람인 걸 깨달았다. 누가 나에게 어떤 사람이냐고 물어보면 나는 목표라고 얘기할 정도이다.

 

 

전역 후 

 

 전역을 하고 바로 복학을 하며 2학년 1학기를 보냈지만 전공에대한 고민이 있었다. 내가 원해서 왔다기보단 평범에 갇혀 선택했던 문과가 제일 많이 간다던 사회복지학과였다. 그렇게 하고싶은 일을 찾으며 1학기를 보내던 와중 보이는 건 미디어소프트웨어학과였다. 나는 이 학과가 목표가 되었다.

 

 미디어소프트웨어는 게임 개발자가 되기위한 학과였고 공대였다. 문과인 나에겐 공대는 걱정되었다. 코딩도 한 번 안해본 나는 밀리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도전하기로했다. 목표로 잡은건 이뤄야한다는 생각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2학기에 전과를 하고 학기에 들어섰다. 4학년때 졸업이 목표인 최대 18학점인 한학기중 전공 수업 6개로 17학점을 들었다. 남들처럼 1학년때부터 수업을 들은게아닌 2학년 2학기때 처음 듣는 전공인만큼 졸업요건을 맞추려면 1,2학년 수업을 같이 들었어야 했다.

 

 수업을 듣기 시작하면서 팀플이 6개 수업중 4개나 됐었는데 그 중 3개를 조장을 했었다. 열심히 해야한다는 명목하게 경험이 될까 싶어서였다. 여기서 나는 자신감을 얻는 계기가 되었다. '리더'의 무게감을 느끼면서 하는 나의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던 것이다. 군대에서의 경험이 도움이 된걸까 조장으로서의 역할을 열심히 수행해나갔고 책임감에 더욱 더 열심히 노력했다. 평소에 능력만 코딩실력만 좋으면 된다고 생각했던 미디어소프트웨어학과는 그게 전부가 아니였다. 남들보다 실력이 떨어질까봐 걱정이였지만 리더로서의 역할은 그 누구보다 잘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 책임이 필요한 자리인만큼 노력했고 또 노력했다. 

 

 팀플이 제일 많은 수업은 게임 기획 수업이였다. 코딩 실력보다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요구되는 팀플이였는데 여기서 나는 나의 장점을 발견했다. 팀원들의 능력을 끌어올리는일, 브레인 스토밍 등등 커뮤니케이션 쪽에서 정말 많은 장점이 있다고 깨달았고 재밌었다. 그렇게 게임 기획이라는 게 정말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게임 디자이너라는 꿈이 생기게 되었다.

게임 디자이너 = 게임 기획자

 

 

마무리하며

 

 이제는 정말 달릴때가 온 것 같다. 항상 핑계로 살아오던 나는 이제 달려나갈 목표인 꿈이 생겼으니까 나중에 이 글을 보며 웃는날이 오면 달려오느라 수고했다고 말해주고싶다.